01
So call me anything
향돌, 사소함 그 바람 같은 무게

 

그것에서 그를 보게 한다
그리움에 있어서 가장 사무치는 것이 사소한 것이다
오후의 느긋한 데이트는 괜찮지만
목이 다 늘어날 만큼 즐겨 입던 티셔츠는
늦저녁 공원은 괜찮지만 맛있게 먹던 빵은
심야의 영화는 괜찮지만 색색 잠든 숨소리는
손톱, 그걸 매만지는 버릇, 퇴근 시간, 그 걸음걸이는
괜찮지 않다
괜찮지 않아
네가 좋아하던 사탕 봉지를 보고선
그 바람 같은 무게에 온몸을 다 얹은 때도 있었다
네 가방을 열면 사탕 냄새가 날 만큼 수북이 쌓이던
그것에서 너를 본 적이 있었다
사탕 봉지가 머리 위로 와르르
알맹이는 온데간데없고 그것들만 사방을 날아댔다
아주 미친 듯이 미친 듯이
사소한 게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 알아야 한다
사소함이 어디까지 나를 무너뜨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향돌, 사소함 그 바람 같은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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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돌, 내 사랑의 속성 中

 

 

16일의 너와 17일의 너에게 각각의 생소한 사랑을 느껴. 단 하나의 너에게 나는 매번 새로운 사랑에 빠져. 이 사랑이 다하면 우리는 끝일까. 사랑보다 먼저 삶이 다하진 않겠지. 다 전하지도 못했는데 끝이 오진 않겠지. 그리되면 나는 꽃피우는 비가 되어 네가 내려지려나. 그 장마가 그치면 우리는 끝일까.

향돌, 내 사랑의 속성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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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냄새

 

 

'네 곁에서 향냄새가 나'라는 소리를 들은 적 있다. 섬세하게 부는 바람, 건조하게 내리쬐는 태양의 길, 조금은 어두운 방 안, 그 위로 타고 오르는 기다란 연기. 어떠한 냄새라고 정의할 수 없으나 매 그 순간을 사랑하게 되는 걸 보면 애착이 맞는 것 같다. 그 향이 내 품에서 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조금 가슴 떨린 건 당연한 수순인가. 적당히 살아가고 있다. 봄이 오고 있다. 아직 봄소식을 들으면 가슴이 뛴다. 나열되는 문장들 사이사이에 좋아하는 것들을 숨겨 놓는다. 글을 적는 나만 알 수 있도록 단단히 잘 숨겨두었다. 우스운 일이지.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의 간극은 크면서도 좁아서 어떨 땐 내가 뭘 하고 싶어 했더라 하는 의문이 든다. 변덕이 제법 심한 사람이니 이 또한 금방 흩어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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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

 

계속해서 발굴되는 내 지난 날의 과거가 적힌 글들을 볼 때 마다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스스로에게 향하는 분노와 질책 때문에 안 그래도 안 좋은 정신 상태가 너덜해짐을 느낀다. 타인과 상관없이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일이 반복됨에 누굴 탓할 수도 없는 녹진한 감정이 조금 버거운 참. 나는 참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사랑해서, 정의하고 싶지 않는 것들을 부둥켜 안고 있는 형상이 역겹기도 처량하기도 하다. 애써 끄트머리를 잡고 멀쩡한 척을 하고 있던 건가. 조금의 풍파와 시련에도 부스러기가 우수수 떨어지니 도무지 어찌 할 수가 없다. 나는 대체 뭘 하고 싶은 걸까? 어떻게 하고 싶은 걸까? 질문에 답을 하고 싶긴 한건가? 매번 말하기엔 너무 큰 것들이라 들키기를 바라며 숱한 시간을 보내왔던 지난 날, 아주 조금 솔직해졌다고 하지만 나는 아직 들키고 싶은 모양이다. 별 것도 아닌 거라고 정의하지만 울컥 울컥 쏟아지는 눈물은 분명 스스로를 향한 거겠지. 현명하고 굳건한 사람이 되고 싶다.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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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그대에게 가고싶다

해 뜨는 아침에는
나도 맑은 사람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그대 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밤새 퍼부어대던 눈발이 그치고
오늘은 하늘도 맨 처음인 듯 열리는 날
나도 금방 헹구어낸 햇살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그대 창가에 오랜만에 별이 들거든
긴 밤 어둠 속에서 캄캄하게 띄워 보낸
내 그리움으로 여겨다오
사랑에 빠진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그리움 하나로 무장무장
가슴이 타는 사람 아니냐

진정 내가 그대를 생각하는 만큼
새날이 밝아오고
진정 내가 그대 가까이 다가가는 만큼
이 세상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면
그리하여 마침내 그대와 내가
하나 되어 우리라고 이름 부를 수 있는
그날이 온다면
봄이 올 때까지는 저 들에 쌓인 눈이
우리를 덮어줄 따뜻한 이불이라는 것도
나는 잊지 않으리

사랑이란
또 다른 길을 찾아 두리번거리지 않고
그리고 혼자서는 가지 않는 것
지치고 상처입고 구멍난 삶을 데리고
그대에게 가고 싶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야 할 신천지
우리가 더불어 세워야 할 나라
사시사철 푸른 풀밭으로 불러다오
나도 한 마리 튼튼하고 착한 양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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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쓰는 글


요며칠 생각이 많아졌다. 애정을 주는 사람이 생기면 일기를 덜 쓰게 되는 건 천성인듯 하지만, 이전과 분명하게 다른 것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한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도, 돌보는 일도 내팽겨치고 순간에 집중하던 지난 날과 대비해서 지금은 나를 제법 돌보며 관찰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기분도 몸상태도 너무 나빠서 왜 이럴까 하고 고민했는데, 그냥 그런 날이었나봐. 그런 시기가 지나고 나니까 캄캄한 하늘이 예쁘고 잘 엮인 책 속에 문장들이 평소보다 더 콕콕 박히고 어느새 많이 길어진 머리카락에 애정이 가더라. 연말이면 다이어리를 쓰고 싶다고 항상 생각하는데, 손으로 쓰는 것보다 타자를 두드리는게 더 솔직해질 수 있다는 걸 안 이후부터는 편지 외에는 손이 잘 가지 않는다. 그냥, 진하게 남기고 싶은 것들만 몇 개 적을 뿐이지. 오늘은 나를 표현하는 글을 쓰고 싶은 날. 트위터에 한참 쓰다가 오랜만에 일기장에 들렸다. 상태에 대해서 더욱 집중해야지. 나를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그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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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혐오

 

 

나란 사람은 참 웃겨. 아닌 척 너스레를 떨지만 힘껏 날 세운 가시 끝은 형편없이 무뎌서 다가오는 사람마다 별 거 아니었네 하게 만들고, 소중하게 꽁꽁 숨겨둔 것들을 조그만 애정에도 쉽게 내어주니 모든 게 끝나고 나서 허망함에 손바닥을 펼쳐보면 종종 손가락을 다 분질러버리고 싶은 충동이 든다. 이런 엉성함을 지켜주세요, 부디 나를 소중히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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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다시 날 것의 글

 

좋지 못한 상태. 
그냥. 내 삶을 되돌아보면 좋았던 상태였던 적이 잘 없으니까 나는 좋지 못한 상태가 너무나 익숙해서 누군가 어떻냐고 물으면 종종 말문이 막힌다. 디폴드값이 나쁨인 게 나는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아. 부정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냥 그렇게 사는 거겠지. 누군가 좋으면 좋지 않은 사람도 있는 거겠지. 나의 우울을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에 대해서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했던 날에, 내가 뭐라고 종지부를 찍었더라.  

날이 추워졌다. 
날이 추워졌음에도 나는 종종 더워서 티셔츠를 펄럭인다. 그러다가도 갑작스럽게 너무 추워서 몸을 달달 떨어댄다. 친구는 내 몸상태를 걱정하며 한소리하다가, 곧 축 쳐진 나를 보고서 괜찮아 이제는 돌보고 있잖아 점점 괜찮아질거야 하고 말했다. 그럴까? 몸도 마음도 괜찮아질까? 언젠가 그랬지 하고 웃어 넘길 수 있을까? 

상대방이 없어 끝내지 못하는 관계에 대하여. 
아빠와 절대 마음과 마음으로 대화할 수 없다고 확신하기에 내 상처는 이미 그른 거란 생각을 한다. 이미 그른 상처, 마주하기엔 버거워서 가끔만 꺼내보는 이 상처는 내 본질적인 성격에 영향을 잔뜩 끼쳐서 애쓰지 않아도 외면할 수 있고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접을 수 있는데 그렇기에 끝맛이 쓰지만 나는 그것보다 더 큰 것도 삼키고 있잖아. 그러니까 괜찮다고 말하며 무뎌진 것들의 명복을 빌어준다. 어떻게 살아야할까 하고 물었던 영지 선생님의 말이 영화를 보고 난 다음부터 종종 내게 물음을 던진다. 삶이란 버티는 것이지, 어떻게 풀어가야할까에 대한 고민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결론을 낼 만큼 강하지 않기에 나는 오늘도 물음에서 물음으로 생각을 끝낸다. 참 가련하지 않을 수 없어. 




귀야우어어ㅓㅇ어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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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솔아, 어째서

 

잊고 있던 꽃무늬 원피스가 잡혔다.

어떻게 이런 걸 입고 다녔을까 의아해하다

의아한 옷들을 꺼내 입어보았다.

 

죽어버리겠다며 식칼을 찾아 들었는데

내 손에 주걱이 잡혀 있던 것처럼

그 주걱으로 밥을 퍼먹던 것처럼

 

밥 먹었냐, 엄마의 안부 전화를 끊고 나면

밥 말고 다른 얘기가 하고 싶어진다.

나는 이제 아무거나 잘 먹는다.

 

잊지 않으려고 포스트잇에 적었지만

검은콩, 면봉, 펑크린, 8일 3시 새절역, 33만 원 월세 입금,

포스트잇을 어디에 두었는지 잊었다.

 

까맣게 잊어버린 검은콩이 냉장고에 있었다. 

썩은 내를 풍기는 검은콩엔 왜 싹이 돋아 있는지.

 

이렇게 달콤한데, 중얼거리며

곰팡이 낀 잼을 식빵에 발라 먹던 엄마처럼

이렇게 멀쩡한데, 중얼거리며

유통기한 지난 우유를 벌컥벌컥 마시던 엄마처럼

죽고 싶다는 말이 솟구칠 때마다

밥을 퍼서 입에 넣었다.

 

엄마도 나처럼 주걱을 잡았을 것이다.

눈을 뜨자마자 엄마는 매일 주걱부터 찾아야 했을 것이다.

 

밥맛은 어째서  잊힌 적이 없는지

꽃들의 모가지가 일제히

햇빛을 향해 비틀리고 있는지

경이로움은 어째서 징그러운지.

멈춰버린 시계를 또 차고 나왔다.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꽃 없는 꽃밭에 철퍼덕 앉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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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재, 농담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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