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So call me anything
서면으로 보냈던

 

 

전날엔 기분이 좋지 않았다. 타의에 의해 감정이 바닥을 쳤는데, 다시 오르는 건 순전히 나의 몫이지만 스스로에게도 실망을 한 탓에 쉽게 괜찮아지질 못하고 목구멍 언저리에 얹힌 축축한 울음만 꿀떡 삼켜댔다. 평소라면 지나치지 않았을 꽃몽오리나 안개에 흐려진 달 따위가 감흥 없이 닿아 바스러졌다. 살아가는 건 이런 일들이 무수히 많이 스치는 것이겠지. 크게 닿는 통증에 의연하게 대처하고 싶은 욕망은 커다랗지만 할 수 있는 건 그저 버티는 것뿐이니 스스로를 덜 자랐다고 표현하며.
가라앉은 나를 위해 만들어준 요리는 축축한 나를 그나마 웃게 만들기 충분했고, 사진을 찍으며 따뜻한 마음에 몰래 눈물 반 보답하고 싶단 사랑 반.

 

/

 

언제부턴가 날씨 감각이 무뎌지고 오늘이 이월이던가 삼월이던가, 그렇게 무던히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의문이 들었다. 작년 삼월에도 이렇게 추웠으나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니 나 또한 망각하고서 다시 의문스러운 추위를 느끼고 있는 것인지. 
나라는 사람은 꼭꼭 숨겨두고서 아주 조금의 틈만 허락하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런 공간이 침범 당했다고 한 번 생각을 하게 되면 집요한 대신 그냥 그 공간을 허물어트리는 걸 택하니 내 것에 애정이 있는 사람이라고 칭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

 

잘게 내리는 눈송이를 보고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걸 보니 이번에도 이렇게 지나가나보다.

 

/

 

강박적으로 무언가를 기록하려는 성미도 이런 날이면 한풀 꺾인다. 조금만 다시 생각하더라도 구역질이 나서 뭍은 것들. 어려선 지나간 날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들을 핥으며 자위했는데 이젠 돌아보는 것에 대한 회의로 인해 과거를 추억하는 것을 이따금의 유희로 남겨놨다. 정말 가끔인 것이다.

 

/

 

말 그대로 전쟁 같은 일주일이 지났다. 생각하기를 포기한 겨울 시기를 깨우기 위해서라고 하더라도 조금 버거웠던 지난 며칠, 함께 하는 사람이 없었다면 더욱 힘들었을 것을 알아서 더 애틋한 감정을 담아 애인의 생일을 보냈다. 스토크라는 이름을 가진 꽃의 꽃말은 사랑의 굴레, 영원히 아름답다. 생긴 것만큼이나 로맨틱한 이 꽃을 선택한 건 특별한 이유는 아니었는데, 함께 주고 싶어 산 꽃송이 리샨의 꽃말도 영원한 사랑인 것을 보면은 유독 애인과 영원은 밀접한 것 같아. 01. 퍽 귀여운 발음.

 

 

/

 

추위 때문에 잔뜩 웅크려있던 시기가 지나니 삼켜뒀던 것들이 기어 나와 기승을 부린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새로운 단어를 곱씹고, 봄에 닿고, 계절을 살고.

 

 

 

'0on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군가 내 일기장을 본다면  (0) 2021.01.18
기록하지 못한 날들이 선명해 아쉬운 날의 기록  (0) 2021.01.18
향 냄새  (0) 2020.03.26
몰라~~~~  (0) 2020.02.07
오랜만에 쓰는 글  (0) 2019.12.27
yunico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