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진, 북극여행자
늘 그래 왔듯이
몇 개의 강과 몇 개의 구름으로는
나를 달랠 수가 없었어
한 계절 한 계절씩
다른 옷을 갈아입는 일로는
나를 바꿀 수 없었어
눈을 감으면 멀리서
작은 짐승이 혼자 눈을 밟고 가는 소리
보름달이 뜨면
길 잃은 늑대의 휘파람 소리
사람의 말을 배우지 않은 북쪽 숲의 바람 소리가
나를 불러서
새들의 하늘 지도를 빌려
열흘 낮 열흘 밤
이미 그곳에 있는 나에게로 갔어
나는 혼자일 때 가장 덜 외로웠으니
나는 사랑이라는 발음이 아주 서툴렀으니
광활한 얼음 벌판에서
풋사과 빛 오로라처럼 너울거리고 싶었어
별에서 슬픔이 날아와 내게 안길 때
무엇에서 시작되든 슬픔으로 끝나는 나의 시를
다시는 고치러 돌아가지 않기로 했어
내가 반성할 것이 라고는 슬픔뿐이고
그 슬픔마저 없으면 나는 정말 혼자가 될 테니까
그리고 기억이 나를 조금씩 속여 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