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기에 막 들어설 무렵 일찍이 독립한 황룡은 특유의 거만함으로 점철된 아직 덜 자란 줏대 없는 존재였으니 그 무렵 그가 생각한 것이 곧 현실이 되고 삶이 됨에 눈에 보이는 것들이 얼마나 가소로운 존재였는지. 많은 것이 새로우나 그 새로움 또한 오만함으로 뭉쳐졌으니 발에 치이는 것들이 소중할 리 만무했고 그에게 세상은 발에 치이는 것들이 전부였으니 소중한 것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런 오만함으로 점차 굳어진 인격체에게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너무나 많았다. 어디서든 볼 수 있으며 어디서든 죽었다. 단 하나의 인간이 단 하나의 반짝임이 된다니 허무맹랑한 말이 아닐 수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반짝임 조차 자신의 것이라 여기던 황룡은 끊임없이 생각했다. 인간으로 인한 영생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그것은 축복이 아닌 족쇄였으며 근본부터 다른 특별함을 가진 용에게 채워진 최소한의 제어장치였다. 그것을 선택하는 기준은? 마음이 동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저런 약하디 약한 존재가 가지는 가치가 대체 무엇이길래. 물음과 물음이 이어지는 간격에 있어야 할 것이 더러 없는 황룡은 이 물음에 오랜 시간 머물러있었다. 황룡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민족이라고 칭하기에도 부족한 작은 군락을 가진 마을이었다. 족장의 다스림 아래 신을 숭배함에 바느질을 하지 않는 옷을 입고 외관을 꾸미는 데 있어서 자연을 야기하는 곳이었다. 이 작은 군락은 3년 이상 키워야 꽃이 피는 구근을 애지중지 키워 땅에 옮겨심는 것을 풍습으로 삼았기에 5월과 7월 사이에 주변을 따라 흐드러지게 핀 백합이 가히 절경인 곳이었다. 자연에서 도태된 백합을 땅에 옮겨 심은 것도 감탄할 만했으나 먹고살기도 팍팍한 시점에 꽃이 다 무엇인가. 황룡은 그런 아름다움을 취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어느 날은 천박하다며 혀를 찼다가 또 어느 날은 그 아름다움에 취해 며칠이고 그 사이에 존재했다. 어느덧 황룡은 이곳에서 물음을 해결하고자 인간의 몸을 하고 긴 시간 그들을 관찰했다. 황룡은 어느 날은 아이였다가, 또 다른 날은 여인이었다가, 그다음 해에는 사내였다. 그곳에서 아이가 태어나고, 다시 아이가 어른이 되어 늙어 죽어갈 때. 그것들을 멀직이 서서 바라만 볼 때쯤이다.
황룡은 이 시점에 어미가 버린 아이를 마주하게 되는데 아직 세상에 나온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소리를 지르는 것뿐인 핏덩이였다. 그 아이가 세상에 나와 돌연 떠나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며 세상이 정한 순리이니 그 순리를 거스르는 법 없는 황룡이 그 아이를 주워다 먹여주고 재워준 것은 순전히 한 맥락의 변덕일 것이다. 아이는 아픔 없이 컸다. 순한 눈매가 도드라지는 것을 제외하면 밋밋하고 수더분해 곧잘 울지만 또 곧잘 웃을 줄 아는, 어느 곳에나 있고 어느 곳에든 질 수 있는 그런 인간이었으니 황룡은 그 인간이 귀찮다가도 목적 없는 책임감 때문에 곁을 떠날 수 없었다. 그렇게 점차 한해 두 해가 지났던가. 훌쩍 커 자신을 아버지라 부르는 아이에게 이름 하나 지어주지 않았던 황룡, 그는 아이를 아이라고 칭하였으니 이 얼마나 무정한가. 그맘때에도 항상 하늘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곳에 존재해 먼 곳을 향하는 시선을 멀 그러니 바라보기를 몇 년, 아이는 황룡에게 물었다.
"아버지. 아버지는 하늘이 좋으세요?"
그 물음에 뭐라고 대답을 했던가. 그저 가까이 닿음에 한평생 행복할 수 있다고. 그렇게 대답했던가. 아이는 황룡에게 물음을 담아 시시때때로 말했으나 좀처럼 대답하는 법이 없어 그렇게 일방적인 관계를 무던히 쌓아올리던 둘의 관계는 무채색이었다. 아이는 결혼을 했고, 또 다른 아이를 낳았으며, 그 아이마저 커버렸다. 자연의 이치를 모방하던 황룡 또한 쇠퇴했으며 돌연 죽음이 찾아와도 어색하지 않을 모양새를 하고 있었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고나기를 어쩌지 못하고 두 눈 만은 여전히 형형색색 했다.
황룡조차 죽음을 모방하진 못했다. 죽음을 떠올리기엔 황룡이 너무 어린 탓도 있었고 인간의 죽음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그에게 허용되지 않은 그림자이기도 했으니 어느 날 점차 죽어가던 아이를 바라보며 뜻 모를 감정을 정의하지 못하고 멀 그러니 서 있을 때. 아이가 황룡을 불렀다.
"..... 아버지는 우리와 다른 존재 같아요."
"잡히는 듯싶다가 잡히지 않아, 저를 위해 이곳에 머무셨던 건가요?"
그 마른 웃음이 얼마나 사람을 초연하게 만드는지 그때까지 인간의 감정이라곤 조금도 알지 않았던 황룡조차 가슴께가 뻐근해졌으니 평소라면 어림없는 소리라며 엄포를 놓았을 테지만 그 뜻 모를 감정에 동조해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아이의 몸은 형편없이 허물어져 예전 그때의 모습을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때의 그 아이였다.
"저를 잊지 마세요."
"...이 곳을 잊지 말아주세요."
너무 어려운 부탁인가요.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아이는 자연의 이치대로, 세상의 순리대로 흩어졌다. 언제나 가까이서 봤던 인간의 죽음이다. 더 이상 몸이 오르고 내리지 않아 점차 딱딱해져 이후에는 형체조차 남지 않는 인간의 죽음. 도드라지는 것 없이 평범한 죽음이었다. 그런 죽음에 왜 이다지도 가슴이 아픈 것인지. 비로소 황룡은 그 아이가 죽었을 때야 특별함을 깨달았다. 그것은 마음이 동하는 것, 애정이 꽃 피는 것, 나의 하나뿐인 반짝임이 되는 것. 그 유일한 반짝임은 하늘의 부름에 세상으로 흩어졌으니 동시에 상실감과 슬픔 따위를 함께 깨우치며 생소한 감정에 얼마나 가슴을 떨었던가.아아, 덧없음은 나의 몫이구나. 소리 없이 바닥을 치며 눈가를 가리는 눈물을 훔치며 황룡은 그렇게 이틀, 삼일, 한 달하고 두 달... 그렇게 장장 일 년간을 눈물로 보냈다. 무기력을 등에 지고 지독한 상실을 경험한 황룡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았다. 용이란 존재는 그러했으니 타고나기를 오만하나 그 오만함을 탓할 수 없는 경의로운 존재. 깨달음은 매 순간 존재했다. 매 순간이 그를 다른 존재로 만들었다. 그렇게 점차 나아가며 더 나은 존재로 살아간다. 용이란 그런 것이다.
그 이후 황룡은 작은 군락이 홍국에 흡수돼 지도에서 땅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곳에 존재했다. 백합이 피는 아름다운 곳. 스스로의 이름을 릴리라 지칭하며 그들의 풍습을 그대로 몸에 담아 아이의 바람을 기억하는 황룡은 용이기에ㅡ 오늘도 살아간다. 그의 이야기의 시작은 있으나 아직 끝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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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급하게 썼고 이 때 글 슬럼프라 읽을 때마다 손발이 막 오그라드는데 기록용으로 남겨둔다. 우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