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호, 모든 익사체는 떠오르려고 한다 - 에밀 시오랑에게
이유 없는 슬픔이 나를 불심검문하는 날이 있네 그런 때 마음은 쪽방에 갇힌 어둠을 가만 들여다보네 물결무늬로 흔들리는 눈동자 위를 떠가는 부유물 같은 기억들, 한때 절망은 일벌처럼 분주히 인간의 정원을 쏘다녔지만 벌집이 된 심연의 여왕벌은 까만 애벌레만을 생산했네 권태의 명수 무기력의 천재 우울의 가내수공업자 타락의 장인 불신의 성자 따위가 이 돌연변이의 별명이었네 그것은, 나는 내가 되는 공포...... 홀로 될 때의 유령...... 갈 데 없는 귀소본능만이 시나브로 흐려가는 영혼의 녹슨 엔진이었네 그렇게 마음자리에 비탄의 괴뢰정권이 들어선 날이었네 나는 어둠 속을 심해어같이 헤엄치는 쪽방에서 마음눈의 색맹이 되어갔네 온몸이 물속에 잠겨야 사는 침수식물처럼, 모든 물은 익사의 빛깔을 띠고 있다는 자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