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지칠 줄 모르던 대상 없는 연민과 죄의식이 요즘엔 꽤 덜하다,고 생각했다. 덜하다고 생각하니 덜한 게 아니라 아예 생각조차를 안 하고 있었던 사실을 인식했다. 영원히 그곳에서 살 것처럼 굴더니 너도 인간이긴 하구나? 속에서 비아냥거리니까 나는 한 번 더 생각하는 척을 했는데 척은 척 일 뿐이다. 며칠, 혹은 몇 달 만에 xx의 이름이 내 입에서 나왔다. 나는 아주 아주 아주 묘하다. 사실 9월 중순에도 이런 기분을 느꼈었는데, 그땐 xx의 이름을 딴 어떤 물체를 보고서. 그것도 며칠 동안 내내 보면서도 끝끝내 xx를 떠올리지 않았었다. 한참 지나고 나서야 책상 위를 굴러다니는 그 상표를 보고 아차 싶었다. 나는 xx를 잊는 게 좀 많이 거북하다. 그 인간은 나를 애정결핍증 환자에 불쌍한 인간으로 생각하고 있겠지만. 나는 그것조차 나를 기억하는 방식이라고 자위하며 손끝을 톡 톡 친다. 톡 톡 치면 그만큼의 추억들도 툭 툭 바닥을 친다. 나는 그것들이 아까워서 곱게 곱게 모아서 다시 포장을 하곤 했다. 그런 행위를 더 이상 반복하지 않는다는 건 나는 기억하는 방식을 잊은 것인가? 아니면 xx를 잊은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나는 역시 망각의 동물인가.
네 생각만큼은 아니야. 네가 보는 것과는 달라. 나는 이런 말들이 싫었다. 나는 아직 눈에 보이는 게 전부인 사람이고,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사람인데. 그 사람의 본질이 내가 생각하던 것과 다르다고 해서 그 사람과의 처음과 끝이 전부 틀어지고 망가지는 건 좀 잔인한 일이잖어. 어떤 게 사실이고 어떤 게 거짓인지 나는 그 잣대가 아직 어려워서 혼란스럽다. 하지만 난 말이야 내 사랑스러운 애인이 내 소중한 친구 둘이 본질적으로 나쁜 사람이라고 해서 '네 생각만큼 좋은 사람은 아니야'라는 소리를 타인에게 듣는다면, 나는 필수불가결적으로 그 타인을 나쁜 사람으로 치부할 것이다.
아무튼간에 직접 마주하고 닿은 시간이 많은 사람과 문자 몇 자로 마음을 확인한 사람 중에 후자가 더 소중하게 느껴졌던 사실은 평생 내 숙제일 거 같단 생각을 한다. 나는, 왜, 가까이 있는 사람을 좋아하지 못했지? 나는 왜, 속이 시커먼 사람을 좋아했을까? ㅡ나는 굉장히 단순한 사람인가? 그게 아니면 속물인가? 누군가가 판단해 이야기하는 나 말고 나는 내가 객관적으로 보는 내가 궁금하다. 언젠가 나를 고발하는 사람은 내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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