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청이가 죽었을 때,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렸어? 하고 물었다. 나는 그게 으레 죽은 물고기를 버리는 방법이라는 걸 안다. 나 또한 숱하게 많은 죽은 물고기들을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렸다. 다시 한 번 낙사해서 죽는 그 모습을 보고 저 멀리 떠내려가 다시 살아 움직이는 상상을 했다. 어쩌면 죽은 척을 한 게 아닐까, 여기가 너무 좁고 답답해서. 참을 수 없는 지경에 다다랐을 때 비로소 죽은 척을 하고 나를 떠나는 게 아닐까. 청이가 죽은 지 몇 달조차 채 되지 않았지만 나는 좀처럼 그 죽음을 떠올릴 수가 없다.
어렸을 때 손가락 길이만 한 주황색 금붕어를 다섯 마리 넘게 기른 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 금붕어들이 너무 좋아서 어항째로 가지고 다니며 자랑을 했었다. 뚜껑이 빨간 색인 플라스틱 수집통이었는데 만원 남짓하게 구입해 손잡이가 영 부실했던 어항으로 기억한다. 어렸던 나는 그 부실한 손잡이가 그들의 목숨 줄이라는 걸 알 턱이 없었고, 곧 운이 좋게 ㅡ혹은 나쁘게ㅡ 엘리베이터 안에서 부실한 손잡이가 엇나가며 어항이 바닥을 쳤다. 바닥에 깔아뒀던 돌들이 사방으로 튀고 금붕어들이 배를 보이며 펄떡거렸다. 나는 뜨거운 손으로 금붕어를 건져올렸다. 금붕어들은 더 펄떡거렸다. 아주 조금 남아있는 어항 속 물 안에서 미친 듯이 입을 뻐끔거리던 그들을 기억한다. 나는 그 이후로 금붕어들을 부모님에게 떠넘기고 약하디 약한 수중 생물을 멀리했다.
어린아이의 얼굴을 하고서 금붕어에게 화상을 입힌 이 여자는 커서 폐로 호흡하는 물고기를 기른다. 저를 위해서 멀리까지 나가 수초를 사 왔더니 그 수초들의 뿌리를 주둥이로 다 찢어발겨놔 그 찌꺼기 위에서 잠을 자던 물고기였다. 먹이를 보면 플레어링을 하는 바람에 이름은 (멍)청이었고, 또 반대로 푸른색이라서 청靑이기도 했다. 그 맘 때 나는 그 물고기를 기르는 내가 사랑스러웠던 건지, 그 물고기가 사랑스러웠던 건지 의문이 든다. 일 년 넘게 함께하며 점점 노쇠하는 걸 지켜보며 인간의 죽음보다 더 가깝게 다가온 내 청이는 그렇게 겨울을 견디고 봄을 맞이하다가 가장 좋아하는 여름의 계절에 죽었다. 항상 죽은 척을 하며 내 심장을 주무르던 청이의 진짜 죽음은 죽은 척과는 달랐다. 외출 후 곧장 어항을 보러 가는 내 짧은 습관에 직관적으로 오늘이구나 했다. 어항 벽에 기대 지느러미를 축 늘어트린 청이를 보고 나는 지극히 인간적인 고민을 하며 손톱을 뜯었으니 나 또한 일관적인 사람이 맞는가보다.
누군가 또 청이는 어떻게 했어?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렸어? 하고 묻는다면 나는 또한 입을 꾹 다물 거라 확신한다. 나에게 가장 복잡했던 시간을 같이 보낸 내 물고기는 내 고민들을 먹고 자라 그렇게 일찍 간 거야, 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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