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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call me anything
나희덕, 나날들

나날들이 나달나달해졌다

끝까지 사람으로 남아 있자는 말을 들었다

축생도에 속한 존재들은

오늘도 우글거리다 우리로 돌아갔다

그 자리에는 무수한 비늘들과 털들이 흩어져 있다

잘린 줄 모르고 여전히 날름거리는 혓바닥도 몇 있다

ㅡ이봐, 난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티고 있어.

ㅡ저는 매 순간 강해지고 있습니다.

ㅡ그 여자는 구제 불능이에요. 미쳤다고요.

ㅡ당신은 대체 그 말을 믿습니까?

ㅡ네가 죽든 내가 죽든 어디 끝까지 해보자구.

ㅡ어차피 엎질러진 물이잖아요?

ㅡ그렇다고 내가 널용서한 건 아니야.

ㅡ아, 어지러워 죽겠어요.

달팽이관에서 흘러나온 돌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절망은 길가의 돌보다 사소해졌다

아직 사람으로 남아 있느냐고 누군가 물었다

축생도의 우기가 너무 길다

축축한 빨랫감들이 내뿜는 냄새를 견딜 수 없다

좀처럼 마르지 않는 나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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